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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제업체 일감주려고 직접 브랜드 만들었다”
대한민국 봉제산업 살리기 선봉 (주)낙산패션 우병오 대표
 
KoreaFashionNews 기사입력  2017/08/23 [16:30]
▲  대한민국 봉제산업 살리기 나선 창신사 멤버들 - 지난 6월 종로 익선동에 ‘별천지’에서 열린 창신사 런칭 파티에서 좌측부터 (주)낙산패션 우병오 대표, 오수경 머천다이저, 손호철 디자이너, 이학림 디자이너      © KoreaFashionNews

 

 

하드웨어(봉제업체)와 소프트웨어(디자이너) 합쳐지다

“메이드 인 코리아 위해 마진 줄어도 다 같이 살겠다”

패션 브랜드 홍수 속 누구나 편하게 입는 ‘창신사’ 런칭

 

2년 전 자신의 브랜드 점퍼 제작을 부탁하기 위해 창신동에 있는 봉제업체를 찾은 이학림 디자이너에게 (주)낙산패션 우병오 대표는 자신 만의 브랜드를 갖고 싶다는 꿈을 얘기한다. 우병오 대표는 이학림 디자이너와 함께 지난 6월 ‘창신사’라는 의류 브랜드를 런칭하면서 그 꿈을 현실로 이뤄냈다. 하지만 단순한 브랜드 런칭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봉제산업을 살리겠다는 더 큰 꿈을 그리고 있었다.

 

ZARA의 CEO 오르테가는 100달러로 자신의 사업체를 열고 아내와 함께 자신의 집 거실에서 속옷, 잠옷, 나이트가운 등을 만들어 판매하며 시작했다. 1970년대 사업 초기에는 봉제에 능한 부녀자들로 구성된 봉제협동조합을 설립해 주요 노동력으로 활용했으며, 1973년에는 창립 10년 만에 생산 인력을 500여 명으로 늘려 생산력을 확충하기도 했다. 5개월씩 걸리는 디자인-제조-공급-판매 과정을 불과 3주로 단축해 유행을 빠르게 소화해내며 2000년대 들어 ZARA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올라섰다.

 

지난해 빌 게이츠를 이기고 세계 부호 1위에 올랐지만 여전히 오르테가는 “모두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고, 나도 그 중 한 명일 뿐이다”며 ZARA의 성공이 자기만의 특별한 노력으로 비춰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자신의 이익보다 대한민국 봉제산업을 살리겠다는 이유로 브랜드를 런칭한 우병오 대표의 도전에 ZARA의 오르테가를 뛰어넘는 대한민국 패션산업의 제2의 도약을 기대해본다.

 

▲ 지난해 빌 게이츠를 이기고 세계 부호 1위에 오른 ZARA 설립자 Amancio Ortega © KoreaFashionNews

 

 

디자이너는 ‘소프트웨어’‧봉제공장은 ‘하드웨어’

 

이학림 디자이너

“저희 같은 디자이너들이 소프트웨어라면 봉제공장은 하드웨어다. 지난해 11월쯤 우병오 대표로부터 그동안에 브랜드 런칭에 대한 계획을 많이 진행하고 이제는 디자이너만 오면 된다고 해서 올해 1월에 제가 들어왔다. 저 혼자서 하기에는 규모가 커진 것 같아서 손호철 디자이너가 합류했고 또 막내로 오수경 머천다이저가 들어오면서 지금은 3명이 창신사를 함께 이끌어가고 있다.”

 

우병오 대표

“낙산패션은 모기업으로 자사브랜드인 ‘창신사’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디오트, A‧PM, 유어스, 뉴존 등 동대문 5개 상가에 임가공 납품하는 것은 계속 하고 있다. 나중에 ‘창신사’의 규모가 커지면 임가공 일은 그만두고 자사브랜드에만 본격적으로 매진할 생각이다.”

 

이학림 디자이너

“주로 B2C로 진행하는 브랜드는 ‘창신사’로 팔 계획이며 그 외에 도매로 판매하는 브랜드인 ‘낙산사’도 곧 선보일 계획이다. 도매로 납품하느냐 소매로 납품하느냐에 따라서 가격이나 디자인이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처음 시작부터 2개의 브랜드를 계획했다. 원래는 같이 한날 런칭 하려다가 준비과정이 많아서 조금 텀이 있게 됐다.”

 

▲  창신사 로고 - 우병오 대표가 창신동 봉제업계에서 일을 시작해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 KoreaFashionNews

 

 

창신동에서 태어난 브랜드 ‘창신사’

 

이학림 디자이너

“‘창신사’라는 브랜드 이름을 만드는 데 크게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우병오 대표가 창신동 봉제업계에서 일을 시작해 창신동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또 창신동에 봉제협회가 있는데 우병오 대표도 소속이 되어 있다. 봉제 종사자들 대부분이 오래전부터 시작해 아직도 계속 하다 보니 의외로 협회 커뮤니티가 탄탄하다.” 

 

“반면 봉제 일을 하시는 분들 대부분의 애환이 요즘에는 원가나 여러 가지 면에서 중국산에 밀리다보니 창신동을 떠나는 분들도 있고 또 대물림이 안 된 상태라 많이 흐트러지고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 우병오 대표가 많이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아예 우리가 이것을 이어받을 수 있는 어떤 뭔가를 해보자고 생각하면서 브랜드가 시작 됐다.”

 

▲  창신동 봉제골목 모습 일감부족으로 봉제업체들이 창신동을 떠나고 있다.    © KoreaFashionNews

 

“브랜드 이름을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다가 영어이름이나 길게도 지어봤지만 결국엔 ‘창신사’로 하게 됐다. 이름도 세 글자고 ‘사’로 끝나는 게 6, 70년대 감성이다 보니까 젊은 친구들의 경우 처음에 조금 촌스럽게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색다르게 받아들이고 지금은 은근히 괜찮다고 한다.”

 

“디자인은 저와 손호철 디자이너가 반씩 맡아서 진행을 하는데 민주적으로 평가해서 둘 다 찬성하면 통과시키고 한명이라도 반대가 나오면 떨어트리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주요 타깃은 10대 후반부터 40대까지 커버할 수 있게 했다. 딱 어느 세대로 타깃을 정해서 좁게 만들기보다는 디자인도 커머셜하고 소재도 나이가 있어도 얼마든지 수용이 되는 가능하면 넓게 만들려고 했다. 그런 부분에서 제가 예전에 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  예전의 서울을 컨셉으로 어린 시절 새총을 쏘고 장난치듯 노는 모습을 담아낸 창신사 룩북 © KoreaFashionNews

 

손호철 디자이너

“주로 이지 캐주얼웨어가 베이스지만 그렇다고 이지웨어라고 포지션을 정하기에는 디자인 요소가 조금씩은 배열이 되어 있다. 단 디자인 요소를 첨가할 때 아이템마다 다르겠지만 어느 정도 눈에 띈다거나 화려한 것은 배제했다.”

 

“다른 스트리트나 디자이너 브랜드보다는 화려한 부분은 조금 떨어지지만 저희가 선보인 옷들을 소비자가 받아들일 때 이 옷을 입고 오늘 너무 멋있다는 생각보다는 매일매일 입거나 지금 입고 있은 옷처럼 편안하게 데일리웨어로 구매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디자인했다.”

 

이학림 디자이너

“자칫 지루한 옷이 될 수 있어서 아이템 당 하나정도 강조하고 싶은 디테일은 하나씩 넣으려고 노력한다. 휘황찬란하게 들어가거나 그런 것들은 가급적 배제를 하고 누가 입어도 그냥 충분히 납득이 가는 디자인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병오 대표는 추후에 낙산공원 높은 곳에 샵을 내자고 하시지만 아직은 오프라인은 계획이 없다. 하더라도 이미 플랫폼이 있는 편집샵에 납품을 할 생각이다. 또 저희 자체적으로 홈페이지 내에 쇼핑몰을 구축해 판매하고 있다.”

 

“처음에는 노출 효과 때문에라도 규모가 조금 큰 곳으로 한두 군데 들어가려고 한다. 너무 여기저기 막 들어가서 아무데서나 팔리는 것보다는 조금 희소성을 둬 차별화 할 생각이다. 그래서 저희가 선택적으로 우리랑 컨셉이 맞는 곳에 선별적으로 입점할 생각이다.”

 

“추후에는 저희 홈페이지 내 쇼핑몰이 아무래도 마진율이 좋으니까 통합하는 것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현재 홈페이지도 창신사와 낙산사를 따로 만들어 놨는데 최종적으로는 더 큰 하나의 홈페이지로 통합하려고 한다.”

 

우병오 대표

“제가 예전에 동대문 통일상가에서 어른들 옷을 만들었다. 이후에 부인복도 만들고 요즘에는 캐주얼웨어를 만들고 있다. 그러다보니 10대부터 60대까지 옷을 직접 다 만들어봤다. 제가 직접 옷을 다 만들어봤기 때문에 쇼핑몰을 운영하게 되면 이왕이면 10대부터 60대까지 포괄적으로 판매를 하고 싶었다.”

 

“어버이날은 효도상품으로 아버님 점퍼나 코트 같은 것을 살 수 있고 또 어린이날에는 부모님들이 아이들 옷 쇼핑도 할 수 있다. 특히 요즘에는 가족 간에도 서로 문화가 다르다보니 딸이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돈으로 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딸이 있는 아빠의 입장에서 딸이 아빠 옷을, 아빠도 딸의 옷을 사줄 수 있는 한 가족이 들어와서 다 같이 살 수 있는 쇼핑몰을 만들고 싶었다.”

 

▲  봉제산업을 살리기 위해 직접 브랜드 ‘창신사’를 런칭한 (주)낙산패션 우병오 대표  © KoreaFashionNews

 

 

창신동 봉제산업 살리기 프로젝트

 

우병오 대표

“예전에는 30~40대들이 시장 옷을 엄청 사갔는데 요즘에는 홈쇼핑으로 옷을 산다. 홈쇼핑 옷을 국내에서 제작하는 게 거의 없다 보니 이쪽에서 봉제할 옷이 안 생겨 일감이 많지가 않다. 그나마 이쪽에서 하는 게 10대 애들을 타깃으로 한 인터넷 쇼핑몰 일감인데 단가가 워낙 박하다보니까 그것도 쉽지가 않다.”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제가 직접 브랜드를 런칭한 이유가 판매를 두루두루 많이 해가지고 이쪽 동네에 일감을 많이 뿌리고 싶었다. 또 저희가 만드는 것은 100% 대한민국에서 생산하는 것으로 해외에서 생산하는 것은 한품목도 없게끔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저희가 직접 생산을 하기 때문에 중간마진이 없어 가격을 어느 정도 적정선에 맞춰서 많이 파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원단이나 디자인은 고가수준에 맞추려고 하고 대신 가격대는 타 브랜드 가격의 70% 선으로 낮추는 것이 가능하다.”

 

▲  예전의 서울을 배경으로 철수와 영희를 주인공으로 다양한 스토리를 담아낸 창신사 룩북 © KoreaFashionNews

 

“낙산사는 유니클로처럼 일반 소비층이 편하게 집어 갈수 있는 옷들 만들면서 원단 소재는 좋은 걸 쓸려고 한다. 열장을 팔아서 만원을 얻는 것보다는 차라리 20장을 팔아서 만원을 얻는 것을 저는 택하고 싶다.”

 

“20장을 팔아서 만원을 얻는 거보다 열장을 팔아서 만원을 얻는 게 더 편하고 쉽지만 이쪽 동네는 일감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마진이 낮아져도 다른 공장들에 일감을 더 줄 수 있는 방식을 취하려 한다.”

 

“창신사는 수량이 적은 반면 낙산사는 수량을 많이 파는 브랜드로 차별을 두려고 한다. 낙산사는 10대부터 주니어부터 해서 70, 80 어르신들까지 다 들어와서 쇼핑을 하는 그런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86년도에 서울에 올라와 처음 남대문 원아동복에서 봉제를 배워 지금까지 아동복, 남성복, 여성복, 부인복 등 모든 복종을 다 경험해봤다. 지금도 제 주위에 선배와 친구들이 같은 계통에 있어 제가 아동복을 해야 할 경우 아동복 공장에 갖다 주면 다 만들어준다.”

 

“제가 처음에 쇼핑몰 한다고 했을 때 디자인과 원단만 주면 언제든지 만들어주겠다고 해 저희는 디자인 하고 판매만 하면 되는 상황이다. 보통 장사가 잘되면 해외로 일감이 다 넘어가는데 저희는 장사 잘된다고 해서 베트남이나 해외에 오더를 넣지 않고 창신동과 서울 주위에만 오더를 줄 것이다.” 

 

▲ 창신사 브랜드를 런칭한 우병오 대표가 운영하는 낙산패션 봉제공장 모습  © KoreaFashionNews

 

 

주변 봉제업체에서 많이 응원해준다

 

“중국으로 일감이 많이 넘어가면서 일감이 없어진 게 10년이 넘었다. 2008년 중국 북경올림픽이 끝나면 그쪽에 인건비가 많이 올라가니까 국내로 유턴한다고 다들 그렇게 믿고 있었다. 저도 그것만 믿고 10년 전에 공장을 시작 했는데 중국에서 국내에 들어올 물량들이 베트남으로 빠진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베트남으로 물량들이 넘어가면서 오히려 단가가 더 다운이 됐다. 중국에 들어간 사람보다 베트남에 들어간 사람이 마진율이 높아 여기에서 만원이면 베트남은 5천원이면 만들었다.”

 

“가격은 더 다운되고 그리고 중국에서 들어올 때 만장, 2만장이던 게 베트남에 가지고 들어오니까 5만장 단위로 덩치가 더 커졌다. 그러다보니까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양이 자꾸 줄어들었다.”

 

“동대문 도매시장 중 뉴존에서 물건을 지방으로 많이 보내는데 뉴존에 돈 좀 있는 사람들이 베트남에 가서 옷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만들어서 싸게 풀었다. 그렇게 풀다보니까 돈을 많이 벌었겠지만 반면 국내에서 생산하던 봉제업체들의 일감부족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  ‘포스트 차이나’로 불리는 베트남의 내년도 최저임금이 평균 6.5% 오른다. 올해 7.3%보다 인상폭은 줄었지만 그간의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 KoreaFashionNews

 

“요즘은 그나마 베트남도 인건비가 많이 오르면서 조금 시큰둥해졌다. 베트남 같은 경우는 거리가 있다 보니까 한 몫 갖고 오면 다시 리오더가 들어가기 힘들다. 중국은 요즘 보름이나 한 달 안에 다시 리오더가 들어오면 급한 물건은 당겨 올 수 있는데 베트남은 그게 안 된다. 그러다보니 국내에서 그나마 작업을 하려고 하는데 경기가 안 좋다 보니 생각만큼 일감이 안 나온다.”

 

“개성공단 같은 경우 처음에 문을 닫으면서 맨투맨티나 작업복, 학생복 같은 일감이 시장에 엄청 밀려나왔다. 학생복 같은 경우 과거에 개성공단에 많이 들어가면서 이쪽 동네에 학생복 하던 공장들이 일감을 다 뺏겨서 문제가 많이 생겼다.”

 

“그런데 그쪽 개성공단이 문을 닫으면서 학생복이 넘어왔는데 이쪽 동네에선 손을 못 댄다. 단가가 너무 박하게 책정되었기 때문에 그게 결국 다 지방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맨투맨 티 같은 경우 의정부나 동두천 쪽으로 다 빠져나갔다. 여기는 공장이 다 소규모지만 의정부나 동두천의 경우 공장이 다 크다. 물량에 비례하다 보니 단가가 더 저렴하다.”

 

“단가에서 차이가 많이 나다 보니 계속 어려울 수밖에 없어 인터넷 쇼핑몰 위주로 생산을 하는데 그나마 인터넷 쇼핑몰 큰 집들은 자체 프로모션을 둬 서울외곽에서 직접 만든다. 쇼핑몰에서 여기 온 이유는 샘플링하기 위해서다.”

 

“쇼핑몰에 옷이 50개가 있으면 잘 나가는 것은 자기들이 직접 제작하고 여기서 만든 것은 그림을 몇 개 더 갖다 놓는 거에 불과하다. 여기서 하루에 수량이 50장, 100장, 200장 나가버리면 바로 자체 공장 넣어가지고 만들어 버리다 보니까 이쪽은 힘들 수밖에 없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2014년 5월 서울 창신동 봉제공장을 살펴보고 있다.  © KoreaFashionNews

 

 

미싱 두대 세대 돌아가는 것도 벅차

 

“젊은 친구들이 디자이너 2~3년 하다가 나도 가게 할 거야 해가지고 도매 장사에 뛰어들다 보니 가게세는 계속 올라간다. 신인 디자이너들이 많이 들어오다 보니 장사가 되든 안 되든 해마다 20만원 30만원씩 올라간다. 디오트 같은 경우는 작은 가게 월세가 보통 300, 400만원하고 좀 쓸 만하면 800, 900만원할 정도로 엄청나다. 그런데 가게 열군데 중에 돈 버는 곳은 2-3군데 빼고 나머진 다 힘들다.”

 

“예전엔 옷 한 장 팔면 만원이 마진으로 남았으면 요즘엔 6000원, 7000원 그것 밖에 마진이 안 남는다. 그만큼 장사가 안되다 보니까 마진을 많이 놓으면 안 가져간다. 그리고 인터넷 쇼핑몰 업체들 양 좀 파는 업체들은 가격대를 무조건 최저가로 맞혀달라고 한다. 결국 공장에 들어오는 임가공 단가는 예전에 비해 자꾸 다운 될 수밖에 없다.”

 

“예전엔 물량이 많아서 한철에 벌 때는 좀 벌었다. 요즘은 미싱 10대 있으면 10대 풀로 돌리는 날이 얼마 없다. 보통 예전에 미싱 10대 있으면 1년 잡았을 때 8개월 정도는 풀로 돌렸다. 요즘은 풀로 돌릴 수 있는 계절이 거의 없다. 미싱 대수도 많이 줄고 많이 힘들다.”

 

“예전에는 미싱하는 분들이 기본이 10분, 15분 계셨는데 일감이 없어 자꾸 줄다보니까 지금은 보통 3분, 4분 데리고 일한다. 그만큼 힘들어 주위의 선배들은 규모를 줄이고 있다. 저는 그나마 젊어 욕심이 있다 보니 공장 규모를 줄일 생각은 안한다.”

 

“결론은 선배들이 공장을 정리하지 못한다. 정리하면 다른 집에 가서 일당을 하든지 월급쟁이를 해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쉽지 않다. 보통 이 계통에 계신 선배들이 형수님들은 미싱을 하고 형님들은 재단을 하면서 하다보니까 결국 남들 내보내고 부부로만 하는 집들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미싱 한두 팀 더 갖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미싱 두대 세대 돌아가는 것도 벅차다. 창신동은 그런 식으로 바뀌었다.”

 

▲ 동대문 평화시장 봉제공장 안의 모습(1973. 7)   © KoreaFashionNews

 

 

봉제 기술은 여전히 대한민국이 최고

 

“한국인들이 손재주가 좋다. 가끔 섬유공장을 가면 외국인들이 하는 걸 보는데 옷이 라는 건 손재주하고 머리 즉 응용력도 있어야하고 센스도 있어야 한다. 미싱을 박는다고 하면 그냥 미싱을 박는 것도 있지만 원단의 소재에 따라 복잡해 손기술하고 머리가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옷이 맵시 있게 나오는데 그런 부분에서 한국인이 가장 제일 낫다.”

 

“선배들 중 누님들 같은 경우 초등학교나 중학교 졸업하고 바로 기술을 배웠다. 그분들의 기술이 최고다. 어린 나이에 손이 어느 정도 활발하고 움직일 때 그때 기술을 배워서 몸에 습득이 되었기 때문에 그 기술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지금 학생들 고등학교, 대학교 졸업해서 미싱을 배우면 그 기술의 습득을 100% 다 활용하기 어렵다.”

 

“젊은 사람들 와서 하려고 할 때는 돈을 많이 주면 상관이 없는데 특히 이쪽 창신동 같은 경우는 객공 도급제다. 옷 한 장에 만 원이면 열 장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열다섯 장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스무 장 만드는 사람이 있다. 젊은 사람들은 2~3년 배워도 그만큼 안 되니깐 자기 월급도 안 나올 정도로 돈이 적어 거의 찾기 힘들다.”

 

“옛날에 배웠던 사람들은 손들이 빠르다. 옛날에는 시다(보조)와 오야(책임자)가 있어 밑에서 대주기 바쁘니까 위에서 매일 혼나게 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손이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어려서부터 계속 빨리빨리 하다보고 거기서 어느 정도 감각이 있는 사람은 꼼꼼하게 하는 사람이 있고 감각이 없는 사람은 거칠게 하는 사람도 있고 그게 지금도 예전과 똑같이 나온다.”

 

“또 한국인들이 미싱 일을 잘하는 이유는 빠르다. 10년, 20년 전 중국에서 많이 넘어와서 미싱을 하고 있지만 한국인 10장 만들 때 중국인들 아무리 잘해도 6장, 7장 밖에 못 만든다. 한국인들은 뭔가 모르게 잘하는 게 중국인들 와가지고 밟기는 밟은데 나중에 옷 떨어지는 거보면 남들보다 장수가 적다.”

 

“한국인들이 그만큼 꾸준히 일을 잘하고 끈기가 있다. 이 봉제란 일은 끈기가 없으면 힘들다. 보통 아침 8시에 작업해가지고 밤 10시, 11시까지 일을 한다. 그렇게 하면 보통 아줌마들은 적게는 300만원, 많게는 400만원 가져가시는데 예전에 20년이나 지금이나 받는 돈은 비슷하다. 예전에는 미싱사들 웬만한 회사 부장보다 돈을 더 받을 정도로 많이 벌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5년 창신동에 봉제박물관, 봉제거리 조성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 KoreaFashionNews

 

 

봉제산업 보여주기식 지원보다 일감이 먼저

 

“지원은 많이 해주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일감이다. 일감을 많이 주면 되는데 전에 군복 같은 경우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만들어 온다는 얘기를 들으니 답답하더라. 어차피 국민 세금으로 만드는 거 조금 비싸더라도 국내에서 만들면 그나마 국내 제조업이 잘살아지고 움직일 건데 그걸 다 외국으로 내주는 게 안타까웠다.

 

“지금은 군복을 중국에서 만들어 온다고 말들이 많으니까 그나마 관세청에서 웬만하면 국내에서 생산하라고 한다. 공공연하게 들리는 말에 의하면 어떤 업체는 중국에서 북한으로 일감을 재하청을 줘 북한에서 중국으로 받아서 다시 한국으로 넘어온다고 한다.”

 

“개성공단 말고 위에 공단이 있는데 거기로 들어간다고 하는데 북한사람들이 기술이 좋아 중국보다 더 싸게 잘 만들고 중국사람이 하루에 5장 만들면 북한사람은 하루에 7~8장을 만든다고 한다.”

 

“국내생산으로 많이 치우쳐서 보면 홈쇼핑에서 옷을 제일 많이 팔고 있다. 그쪽에서 국내 생산은 거의 없어 국내에서는 타격이 크다. 밑에 홈쇼핑 자막을 보면 중국에서 생산했어도 메이드 인 차이나 글씨가 제일 작다. 원단은 이태리 원단이라고 크게 해놓고 원산지는 메이드 인 차이나다. 원단만 이태리라고 메인 화면에 제일 크게 띄어놓아 나중에 이태리 제품인줄 알고 샀더니 결국엔 중국산인 이런 식이다.”

 

“창신동에 봉제박물관, 봉제거리가 조성된다고 하는데 행정적으로 보여주기 식이라고 본다. 직접 봉제업에 종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게 다 뭔가 싶고 봉제 외적으로 있는 사람들은 뭔가 새로운 게 생겼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질적으로 공장을 하는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일감이다.”

 

▲  지난 20년에 걸쳐 업체들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속속 해외 공장으로 나가면서 미국 내 봉제 인력은 77%가 사라졌다. 그 결과 지금 업체들은 일할 직원을 못 찾아 애를 먹고 있다. 많은 일을 기계가 대신하지만 봉제는 기계로 대체되지 않은 특수 직종에 해당한다.   © KoreaFashionNews

 

 

명품, 만드는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

 

“이태리에서 명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원단 소재도 중요하지만 명품을 만드는 기능장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요즘엔 어디 브랜드가 명품인지가 중요하지 어떤 사람들이 만드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떤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만드는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 옷이라는 게 디자인도 있고 소재도 있지만 그래도 만드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 비중을 두어야 한다. 지금은 디자인 하는 사람, 원단 소재 두개만 갖춰지면 명품이 되는 게 안타깝다.”

 

“어디 방글라데시 아이들에게 돈도 제대로 안주고 만들은 제품이 한국이나 유럽에 가면 명품이 된다. 정작 만드는 사람은 아닌데 명품 브랜드에 명품 원단을 썼으니까 명품이 된다는 건 문제가 있다.”

 

“제가 가장 답답했던 게 국내 봉제, 제조는 당장 일감이 없어서 힘 드는데 요즘 특히 홈쇼핑을 보면 어느 정도 이제 나름 인지도가 있는 디자이너들이 나와서 옷을 판매를 하는데 이태리 원단 쓴 디자인 작품이라며 웬만하면 명품이라고 파는데 정작 밑에는 중국산이다.”

 

▲ 이태리 직수입 원단으로 베트남에서 제작한 코트를 판매하는 TV 홈쇼핑 화면   © KoreaFashionNews

 

“이태리 원단도 A급, B급, C급이 있다. 이태리 가서 보면 이태리 분들이 하는 공장이 있고 중국 사람이 하는 공장이 있다. 이태리 중국 공장에서 삼류 원단을 갖고 와가지고 이태리 원단이라고 명품이라고 얘기를 해버리니까 그게 문제가 되는 거다.”

 

“선배들이 예전에 한 얘기로는 이태리 원단 공장 70-80%가 다 중국사람 손한테 넘어갔다고 한다. 말만 이태리 공장인데 사장은 다 중국사람이다. 그런 원단들이 우리나라에 수입해서 이태리제 원단으로 나와서 만장, 2만장 다 완판 되는 걸 보면 내 속이 터진다. 그걸 지적해주는 사람도 없고 사 입는 사람들도 그냥 생각 없이 사 입는다.”

 

“국내 토종 브랜드가 다 죽으면서 이제는 국내에서 만드는 옷이 없다. 예전에 10년, 15년 전에는 토종브랜드가 제법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 메이드 인 코리아가 없다 보니까 이제는 편하게 생각 하는 것 같다. 토종브랜드가 국내에서 생산하며 끝까지 버티다가 단가 싸움이 안 되니까 결국 마지막에 해외로 나갔지만 결국은 문을 닫더라.”

 

▲ 지난 1993년 미국 아이오와주의 한 상원의원이 아동 노동착취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아동노동억제법을 발의한 후 방글라데시의 한 공장에서는 5만여명의 아동 노동자들이 해고됐다.  © KoreaFashionNews

 

 

메이드 인 코리아라면 해볼 만하다

 

“지금은 그때랑 달라졌다. 그리고 제가 직접 제조 판매를 하다보니까 중간 마진을 줄이면 된다. 베트남에서 만드는 단가도 계속 올라가고 있는 추세다. 베트남에서 요즘에는 아프리카까지 간다는데 아프리카 가보라고 해라. 제 생각에는 이제 해외에서 만들어오더라도 그 이하의 단가는 내려가기 힘드니까 앞으로는 조금씩 올라갈 거라 본다.”

 

“젊은 친구들도 우리 디자이너로 와서 어느 정도 입맛에 맞게끔 디자인 해주고 깔끔하게 해주면 고정 팬들도 생길 것 같다. 또 한류 때문에 아직까지는 해외에서도 되고 하니까 ‘메이드 인 코리아’로 생산해서 해외로 넘어가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이쪽 경우에는 한국산이라고 하면 단가를 높여 받으니까 중국, 북한, 베트남에서 옷을 가지고 와가지고 라벨갈이 해서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그것 때문에 상인들끼리도 말이 많다. 단속을 하더라도 열 명 중에 한두 명만 잡혀 들어가지 다 잡혀가지는 않는다.”

 

“EU나 미국으로 넘어가면 한국산하고 중국산하고는 격이 달라진다. 미국, 유럽은 특히 더 그래 한국산이 30% 비싸더라도 한국산으로 가져간다. 그러다 보니 중국, 베트남에서 만들어서 여기서 라벨갈이만 해가지고 넘기는 거다.”

 

“그리고 지금 해외에서 한국에 일감을 주고 싶어도 여기 생산 기반이 다 무너졌다. 오더 만장, 2만장, 10만장 주면 생산할 업체가 없다. 일감이 많아도 받아서 할 시스템이 안 되니까 그것도 가장 큰 문제점이다. 면목동 저쪽에 라인팀들 다 무너졌다.”

 

▲ 2012년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전태일 열사 42주기 추모를 맞아 11월 13일 오후에 전태일 열사 동상이 있는 서울 종로구 창신동 버들다리를 방문하고 있다. 전태일 열사는 대한민국의 봉제 노동자이자 노동운동가로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제 몸을 불살랐다.   © KoreaFashionNews

 

 

봉제산업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우리가 갖고 있는 임가공비만 올라가면 다시 또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하고 베트남이 있다 보니까 한국에 들어오는 거라고 무조건 많이 줄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해외 생산과도 단가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대가 끊기는 게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지금 하시는 분들이 70살까지는 하시니까 앞으로 10년, 20년은 충분히 계속 할 수 있다. 지금은 하루에 10장 만들지만 오히려 그때 되면 하루에 5장 만들어도 임가공비만 높으면 예전처럼 고등학교마다 봉제반이 생겨서 배울 수 있다. 지금 옷 한 장에 1만원 주는 거 2만원주면 충분히 젊은 사람들이 배워서 할만하다.”

 

“예전에는 힘들다는 인식이 많았지만 앞으로 10년, 15년 후를 얘기하자면 그때 되면 환경이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일단은 제품 한장 만들면 만원, 2만원, 3만원 일반 직장인들보다 더 벌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미국에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대학에 가는 것보다 배관공이 되는 게 낫다고 한 것처럼 우리나라도 봉제하면 전문기술직이니까 대우만 해주면 충분이 가능하다고 본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 같은 경우 단가가 높아서 봉제공장이 조금씩 있다.”

 

“중간 마진이나 프로모션 마진만 봉제하는 사람들에게 돌려주면 봉제할 사람은 많아질 수 있다. 원래는 프로모션이 없었는데 IMF 터지고 나가지고 그때부터 프로모션이 생겼다. IMF 터지기 전에는 다 큰 회사들의 영업사원으로 있던 사람들인데 IMF가 터지면서 뿔뿔이 나와 할 게 없으니까 지인들이 많다보니까 중간에 왔다 갔다 하면서 자기가 하던 거를 대신 해주는 거다.”

 

“중국에 들어가면서 같이 들어가서 물건 만들어 와서 납품해주는데 그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마진을 너무 많이 가져간다. 프로모션에서 만원에 받아가지고 5천원에 넘겨버리면 우린 할 말이 없어진다. 예전에는 큰 기업에서 물건이 바로 왔는데 요즘에는 다 중간에 브로커들이 한 다리 걸쳐서오니까 결론은 밑에 공장들만 더 힘들어졌다.”

 

▲  지난 6월 ‘별천지’에서 열린 창신사 런칭 파티에서 사회를 보는 이학림 디자이너  © KoreaFashionNews

 

 

학림씨는 뭔가 손발이 맞을 것 같았다

 

“대부분 공장자체는 디자이너가 없다. 공장에 일을 맞기로 오는 건 시장 쪽 디자이너들인데 그 사람들은 디자이너가 아니라 심부름하는 사람들이다. 디자인은 가게 사장이 하는데 내가 연구를 해서 디자인을 하는 게 아니라 잡지나 티비에 나오는 잘 나가는 브랜드 카피해서 원단소재만 바꿔서 살짝살짝 변형시켜서 한다.”

 

“반면 학림씨 같은 경우 전문적으로 했고 자신이 하는 브랜드도 있다. 내가 2~3년 지켜보면서 뭔가 손발이 맞을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디자인 쪽은 몇 개가 안 되다 보니 새로운 디자인 안쳐 놓고 이것저것 가르칠 게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는 봉제 샘플 정도로만 할 수 있지 그러고 난 뒤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반면 학림씨 같은 경우는 다 할 줄 아니까 학림씨가 디자인하고 나는 공장에서 제조를 하고 그러면 뭔가 딱 떨어지겠다 싶어서 그래서 같이 하게 됐다.” 

 

 

“봉제업체를 운영하면서 나만의 브랜드를 갖는 다는 게 환경이 안된다보니까 솔직히 힘들다. 예전엔 보세나 공장 규모가 클 때는 직접 만들어서 하는 곳이 좀 있었다. 사무실 직원들도 있고 영업 직원, 과장, 부장도 있고 했는데 요즘엔 소규모로 다 바뀌니까 그거까지 할 여력도 정신도 안 된다.”

 

“그나마 제가 젊어서 하는 거지 주위에 다 50대 넘은 분들이라 거기까지 다 생각을 못한다. 선배님들에게 이런 사업 한다고 했다가 왜하냐며 많이 말렸다. 결론은 지금은 인터넷 몇몇 업체만 많이 벌고 있지 그렇지 않고는 다 힘들다. 남들도 힘든데 네가 굳이 거기까지 신경 쓸 필요가 있냐는 얘기다.”

 

▲ 창신사 제품을 제작하는 봉제 공장 바로 옆에서 원단 재단과 다림질을 할 수 있다.  © KoreaFashionNews

 

 

자체 생산으로 디자인 옵션 늘어나

 

이학림 디자이너

“저희 같은 경우는 좋은 기회다. 저희 입장에서는 항상 아이디어는 있는데 돈이 없고 생산을 하기에는 소량이니까 욕만 먹고 오지만 공장이 바쁜데 제 걸 몇 개 해주려고 일당도 안 나오는데 객공분들을 써야하는 상황이라 공장입장도 충분히 이해를 하고 있다. 또 기껏 그렇게 해도 퀄리티도 제가 원하는 데로 안 나오고 저희는 양이 적은 만큼 마진을 많이 남길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 돈 받고 팔기에는 퀄리티가 아니라는 걸 저희도 아니까 그런 애로사항이 많다.”

 

“하지만 이제는 저희가 샘플을 해도 여기 샘플실에서 정교하게 할 수 있고 하고 나면 공장에 왔다 갔다 하며 샘플 보고 이러는 게 아니라 원스탑으로 여기 있다가 가서 어떻게 진행되는지 직접보고 갔고 와서 수정할 게 있으면 바로 요청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가능하다. 자체적으로 공장이 있으니까 저희가 한 30장만 만든다고 하면 30장만 만드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디자인하는 옵션이 많이 늘어났다.”

 

▲ 2015년 1월 22일(목) 노킹온 오프라인 매장에서 개최한 살롱드스틸리스트(Salon de Styliste)에서 이학림 디자이너가 자신의 브랜드 20th Century forggotten Boy Band, B$B Records 스토리를 대중들과 공유하면서 본인만의 브랜드를 꿈꾸는 미래의 디자이너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하고 있다.    © KoreaFashionNews

 

 

앞으로의 계획과 마케팅은 어떻게

 

이학림 디자이너

“주변에 제 친구들도 저랑 똑같은 고민을 항상 하고 있었는데 부러워할 수밖에 없다. 처음에 잘된 친구들은 규모가 커지니까 그런 게 해결이 되지만 여전히 쇼를 하면서 가격이 비싸거나 양도 좀 적고 그런 친구들이 거의 다 인데 이런 대량생산에 대해서 엄두를 못 낸다. 예산도 없고 종류도 많이 만들 수 없고 여러 가지 제약이 많다보니까 굉장히 불리하다. 저희는 그런 게 없으니까 먹고 들어가는 부분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올해 가을까지 국내에서 열심히 판매를 해보고 가을쯤에 성과가 나오면 후즈넥스트 같은 해외 수주쇼에도 나가보고 싶다. 유럽은 아직까지 계획은 없는데 가격이나 이런 걸 봤을 때 중국이나 일본, 홍콩은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 같다. 또 오는 10월 16일부터 21일까지 열리는 서울패션위크 제너레이션넥스트에도 참가해 패션쇼를 선보일 예정이다.”

 

“마케팅은 저희가 아직까지는 본격적으로 어디에 투자를 하고 돈을 들여서 하기보다는 바이럴을 만들 수 있는 걸로 진행하고 있다. 그 중에 저희가 지금 밀고 있는 게 룩북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거다. 룩북이지만 사진에 스토리나 컨셉 등을 넣은 그래픽노블로 이번의 경우 예전의 서울을 컨셉으로 철수가 영희에게 어린 시절에 새총을 쏘고 장난치듯이 노는 모습을 담았다. 1년에 3번 많으면 4번 정도 한정판으로 출판할 생각이다.”

 

▲ 지난 6월 종로 익선동에 위치한 ‘별천지’에서 열린 창신사 런칭 파티를 찾은 패션 피플들 © KoreaFashionNews

 

손호철 디자이너

“런칭 파티를 준비를 한 것도 홍보를 노린다기보다는 일종의 소비자와의 쌍방 소통을 위해서였다. 보통 브랜드들의 경우가 컬렉션을 하게 되면 소통이 아니라 올해 트렌드를 우린 이렇게 정했고 이것을 만들었으니 봐주세요 식의 일방적인 푸쉬다. 저희 같은 경우 생산 시설이 충분히 갖춰져 있고 코스트가 높지 않아 소량 핸들링이 가능하기 때문에 소비자 의견 반영이 쉽게 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이제는 소비자들과 만나서 대화하고 또 굳이 셀럽들만 오는 파티를 일부로 안하기 위해서 파티도 무료로 아무나 오게 했다. 소비자들이 제일 처음 옷을 만들 때 취지랑 똑같이 편하게 와서 의견 내고 브랜드가 이렇게 나아가는 구나하면서 같이 쌍방향 소통을 하고 싶은 의미로 런칭 파티를 기획했다. 예전에 시골에 잔치를 하면 아무나 다 왔듯이 저희도 그런 의미로 시작을 하며 잔치 같은 느낌으로 파티를 준비했다. 소비자들이 부담 없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서 같이 대화 할 수 있는 자리로 1년에 두 번 정도는 진행할 계획이다.”

 

▲  예전의 서울을 컨셉으로 어린 시절 새총을 쏘고 장난치듯 노는 모습을 담아낸 창신사 룩북 © KoreaFashionNews

 

이학림 디자이너

“대표님이 아침 8시에 출근하시고, 밤 12시에 시장에 물건을 내다 놓으신 후에야 퇴근을 하신다. 제가 들어온 이유로 한 번도 좀 일찍 가더라도 왜 지금 가냐 이런 얘기를 전혀 안하신다. 아예 저희가 하는 일에 손도 안 되시고 제가 기획을 해서 이런 거 해보고 싶다고 하면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데도 해보자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신다. 그림을 크게 그려놓으시고 그 안에 저희가 막 놀 수 있게 풀어놓아주시니까 그동안 한 번 정도는 이런 거 굉장히 호응이 좋을 것 같아서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는 서울 속의 정글 같은 공장자리다. 어르신들이 일하면서 듣는 트로트 음악과 함께 미싱 소리가 들리는데 자주 듣다 보니 운치가 있다. 판매고려 하다보면 유행하는 거 따라갈 수밖에 없겠지만 유명하다 싶은 브랜드들 보면 색깔이 없어 우리나라 브랜드인지도 모르겠다. 서울 팔이는 가급적 안 하려고 하지만 그냥 봤을 때 창신사는 서울하면 떠오르는 브랜드가 됐으면 좋겠다.”

 

“저희는 골수 보수에 가까운 메이드 인 코리아 주의자다 보니까 여기서 나오는 건 뭘 해도 한국적일 수밖에 없다. 최대한 그렇게 냄새를 내려고 하고 있고 여기저기 외국에 있는 제 친구들한테도 자문을 얻고 있고 지금까지는 그림은 잘 그려진 것 같다. 저 혼자 한 게 아니라 다 도와주셔서 왔는데 여기서 조금 더 해보면 그럴듯한 게 나올 것 같다.”

 

김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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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8/23 [16:30]  최종편집: ⓒ 코리아패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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