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제주)의 의복 및 섬유생활문화 ④

박원호의 섬유역사산책-9
KoreaFashionNews | 입력 : 2017/01/12 [14:41]
▲ 2012년 개관한 여수시 하멜전시관. 하멜동상은 네덜란드 호르큼시가 유명 조각가를 통해 직접 제작했으며 무게는 140㎏, 높이 1.2m 크기이다. 하멜은 1653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도중 제주도 근해에서 태풍을 만나 제주도에 표착했다가 1654년 서울로 압송됐으며, 1656년부터 강진 전라병영성에서 7년 세월을 보냈다. 하멜은 1663년 여수에 있던 전라좌수영성에서 문지기 생활을 하다 1666년 탈출, 고국으로 돌아갔다.     © KoreaFashionNews

 

 

◈ 탐라(제주)의 의복 및 섬유생활문화

 

◎ 동사강목에 수록된 탐라(제주)의 역사와 그 풍속

 

《북사(北史)》 백제전(百濟傳)에 의하면, “그 남쪽 바다에 탐모라국(耽牟羅國)이 있는데 백제의 부용국이다”라고 하였고, 왜전(倭傳)에는, “수(隋)나라가 배세청(裵世淸)을 왜국에 사신보냈는데, 백제를 지나 남쪽으로 탐라국을 바라보았다”라고 하고 있다.

 

◎ 해동역사에 수록된 탐라(제주)의 역사와 그 풍속

 

해동역사에 의하면, 진서(鎭書)가 삼가 살펴보건대, 탐라((耽羅)는 바다에 있는 섬나라이다.


후위서(後魏書)에서는 섭라(涉羅)라고 칭하였고, 수서(隋書)에서는 담모라국(聃牟羅國)이라 칭하였고, 당서(唐書)에서는 담라(儋羅)라 칭하고, 또는 탐부라(耽浮羅), 탁라(乇羅)라고도 칭하였는데, 이는 모두 같은 나라 이름이다.


우리나라의 방언에 ‘도(島)’를 ‘섬(剡)’이라 하고, ‘국(國)’을 ‘나라(羅羅)’라고 하는데, ‘탐(耽)’ 글자와, ‘섭(涉) 글자, ’담(儋)‘ 글자의 3음(音)은 모두 ’섬(剡)‘ 글자과 음(音 ; 소리. 발음)이 비슷하니, 대개 이 섬나라를 이르는 것이다.


고기(古記 ; 옛날 기록)에서 칭하고 있는 바, “처음에 탐진(耽津)에 정박하여 신라에 조회하였으므로 탐라(耽羅)라고 한다”라고 하는 것은 견강부회한 설이다.


백제 문주왕(文周王) 때부터 백제를 섬겼고, 백제가 망하자 다시 신라를 섬겼으며, 1094년 고려 숙종(肅宗) 10년에 이르러 강등시켜 군(郡)으로 삼았는데, 지금의 제주(濟州)이다.


책부원구에, 탐라는 임읍(林邑)의 남쪽 변경 바다에 있는 작은 나라이다.

한창려집(韓昌黎集)에는, “해외의 여러 나라 가운데 탐부라(耽浮羅), 유구(流求) 등의 나라는 동남쪽 천지(天池 ; 하늘 연못. 큰 물)에 있다”라고 하였다.

 

▲ 서귀포시가 ‘박연과 하멜’ 등으로 역사적 인연이 깊은 네덜란드를 방문해 돌하르방을 기증하는 등 활발한 국제교류를 통해 서귀포시를 알리는 데 앞장서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4월 26일부터 29일까지 최초로 조선을 세계에 알린 ‘하멜표류기’의 저자 헨드릭 하멜(Hendrik Hamel)의 고향인 네덜란드 호르큼시를 방문, 돌하르방을 기증했다. © TIN 뉴스


탐라는 또한 탐모라(耽牟羅)라고도 한다. 그 나라는 백제의 남쪽 바다 가운데 있다. 옛날에는 사람이나 동물이 없었는데, 3신인(三神人)이 땅속에서 솟아나왔다. 맏이를 양을나(良乙那)라 하고, 다음을 고을나(高乙那)라 하고, 그 다음을 부을나(夫乙那)라 하였다.


어느 날 이 3사람이 바닷가에서 사냥을 하다가 석함(石函)을 하나 얻어 열어보니, 3여인과 개와 소 등 가축과, 오곡(五穀)의 종자가 있었다. 이에 드디어 3여인을 나누어 아내로 삼고, 각자 샘물이 달고 토질이 비옥한 곳을 찾아가서 살았다.


양을나가 사는 곳을 제1도(都)라 하고, 고을나가 사는 곳을 제2도, 부을나가 사는 곳을 제3도라 하고는, 비로소 오곡의 씨를 뿌렸으며, 또 망아지와 송아지를 길러 날로 부유해졌다.


476년 송(宋)나라 원휘(元徽 ; 후폐제의 연호) 4년에, 비로소 백제국에 방물(方物 ; 토산물)을 보내었다. 일본기(日本紀)에 있으며, 이것이 바로 동사(東史)의 본문이다.


후위(後魏) 정시(正始 ; 위나라 선무제의 연호) 연간에 세조(世祖)가 고구려의 사신 예실불(芮悉弗)을 인견하였다.


예실불이 아뢰기를, “황금은 부여(夫餘)에서 나고, 가(珂 ; 보붕. 옥)는 섭라(涉羅)에서 산출되는데, 지금 부여는 물길(勿吉)에게 쫓겨나고, 섭라는 백제에게 병합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수서(隋書)에, 백제에서 남쪽 바다로 3개월을 가면 탐모라(耽牟羅)라는 나라가 있는데, 남쪽에서 북쪽까지의 거리가 1천여리이고,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수백리이며, 토산물로는 노루와 사슴이 있다. 백제의 부용국(附庸國)이다.


수서에는 또, “608년 수나라 양제(煬帝) 대업(大業) 4년에, 문림랑(文林郞) 배세청(裴世淸)을 파견하여 왜국에 사신으로 가게 하였는데, 백제국을 건너 죽도(竹島)에 이르러서 남쪽으로 바라보니, 탐라국이 큰 바다 가운데 있었다”라고 하였다.


수서를 보면, 589년 수(隋)나라가 진(陳)나라를 평정하던 해에 개황 9년, 바로 백제 위덕왕 36년, 전선(戰船) 한 척이 표류하여 해동(海東)의 담모라국(牟羅國)에, 살펴보건대, 바로 탐라(耽羅)이다, 이르렀는데, 그 배가 본국으로 돌아올 적에 백제를 경유하게 되었다.


그러자 여창이 노자를 아주 후하게 실어 보내 주었고, 아울러 사신을 보내어 표문을 받들어서 진나라를 평정한 것을 축하하였다. 이에 고조(高祖)가 잘 대우하면서 조서를 내려 조서는 예문지에 나온다.

 

▲ 정유재란이 한창이던 1598년 5월26일, 선조가 명나라 파견군 장수인 팽신고를 위해 술자리를 베풀었다. 주흥이 한껏 달아오르자 팽신고가 선조 임금에게 고했다. “전하. 제가 ‘색다른 신병’을 소개하겠습니다.” “그래요. 어느 지방 사람이오이까.” “예. 호광(湖廣)의 남쪽 끝에 있는 파랑국(波浪國) 사람입니다. 바다를 세 번 건너야 호광에 이르는데 조선과의 거리는 15만 여 리 됩니다. 이 흑인은 바다 밑에 잠수하여 적선(賊船)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며칠동안 물 속에 머물면서 수중생물(水族)을 잡아 먹을 줄 압니다.” 파랑국 혹은 불랑국(佛浪國)은 1557년 이미 마카오 반도를 조차(통치권을 획득)한 포르투갈의 한문표기이다. © TIN 뉴스

 

▲ 명나라군의 철수를 기념해 그린 <천조장사전별도>에 보이는 흑인용병 4명. 몸집이 너무 커서 말에 타지 못하고 수레에 탔다는 기록에 완전히 부합되는 그림이다. 잠수해서 적선의 밑을 뚫는 특수임무를 지녔지만 별 전과는 기록하지 못했다. © TIN 뉴스


해마다 별도로 조공을 보낼 필요가 없다고 하니, 사신이 기뻐 춤을 추면서 돌아갔다.


신당서에, 당(唐)나라 고종 용삭(龍朔) 초에, 담라(儋羅)란 나라가 있어 국왕(國王) 유리도라(儒李都羅)가 사신을 파견하여 들어와서 조회하였다.


그 나라는 신라 무주(武州)의 남쪽 섬에 있는데, 풍속이 소박하고 누추하며, 개 가죽과 돼지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여름에는 초실(草室 ; 풀짚)에 살고, 겨울에는 굴실(窟室)에 산다.


땅에서는 오곡이 나는데, 소를 써서 경작할 줄 모르며, 철치(鐵齒)로 땅을 판다. 처음에는 백제에 부용하였다.


인덕(麟德 ; 당나라 고종의 연호) 연간에 추장(酋長)이 와서 조회하면서 황제를 따라서 태산(太山)에 갔다.


뒤에 신라의 부용국이 되었다. 가우(嘉祐 ; 송나라 인종의 연호) 연간에 소주(蘇州) 곤산현(崑山縣) 상해(上海)에 어떤 배 한 척이 표류하여 와서 해안에 닿았다.


배 안에는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의관은 중국 사람과 같았으며, 말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시험 삼아 글자를 써 보게 하였으나 읽을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이 서찰 하나를 내보였는데, 바로 당나라 천우(天祐 ; 애제의 연호) <살펴보건대, 천우(天祐)가 사문유취(事文類聚)에는 천수(天授)로 되어 있는데, 이는 천우를 잘못 쓴 것이다.

 

문헌비고(文獻備考)에서는 이를 인하여 고려 태조의 연호라고 하였는데, 이도 틀린 것이다> 연간에, 둔라도(屯羅島)의 <살펴보건대, 둔라도는 탁라도(乇羅島)가 잘못된 것이다> 수령(首領)에게 배융부위(陪戎副尉)를 제수하였음을 고하는 것이었다.


또 하나의 글이 있었는데, 바로 고려에 올리는 표문(表文)으로, 역시 둔라도라고 칭하였으며, 모두 한자(漢字)를 써서 기록하였다.


이는 대개 동이로서 고려에 신하로 소속된 자이다.


몽계필담(夢溪筆談) 교빙지(交聘志) 표류조(漂流條)에 상세히 나온다.


원사에, 탐라는 고려의 여국(與國)이다. 원(元)나라 세조(世祖)가 이미 고려를 신하로 복속시키고는 탐라가 남송(南宋), 일본(日本) 등과 통하는 요충지라고 여겨 주의를 기울였다.


삼가 살펴보건대, 원나라 때에는 탐라가 이미 고려에 병합되었으므로, 원사에 실려 있는 탐라에 대한 사실은 모두 고려기(高麗紀)에 편찬되어 있다.


후한서에, 마한의 서쪽 바다의 섬 위쪽에 주호국(州胡國)이 있다. 그 나라 사람들은 키가 작고 머리를 깎았으며, 가죽옷을 입는데 상의(上衣)만 있고 하의(下衣)는 없다. 소와 돼지를 잘 기르며, 배를 타고 왕래하면서 물화(物貨)를 한(韓)나라의 국중(國中)에서 사고 판다.


살펴보건대, 주호국은 탐라가 아닌가 의심스럽다. 그러나 명확한 증거가 없기에 끝에다가 기록해 둔다.

 

▲ 엘리 발튀스의 ‘얀 야너스 벨테브레이의 동상’(1988년). 하멜보다도 25년 이상 일찍 조선에 표착하여 처음 귀화한 서양인으로 알려진 그의 동상은 고향인 더레이프시와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세워졌다. 그의 험난한 항해를 상징하는 배는 물론이고,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의 로고와 제품들이 함께 표현되었다. © TIN 뉴스

 

▲ 박연 朴淵 / 朴燕, 1595년 ~ ?본명은 얀 야너스 벨테브레(Jan Janesz Weltevree). 화란 출생으로 조선에 정착한 최초의 유럽인이기도 하다. 이름은 ‘벨테브레’, ‘얀’과 비슷한 발음을 따서 지은 것이다.1627년 일본으로 항해하다가 표착해 제주도에 상륙했으나 곧바로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조선시대 전반의 관례로는 조선과 통교하고 있는 국가 중에 접경 국가 출신의 표류자는 직접 송환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무조건 명나라로 보내 조치를 의탁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당시 중국의 정세가 좋지 않았기에(명청교체기) 부산의 일본 왜관에 의뢰해서 일본으로 보내 조치를 의탁하려했으나, 일본은 이것으로 뭔가 거래를 해볼 속셈으로 박연의 일행이 절리지단(切利支丹 - 크리스챤)이란 핑계로 거절했다. © TIN 뉴스

 

◎ 중국사서 등 외국사서에 수록된 탐라(제주)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 한전(韓傳)편에 의하면, 또한 주호(州胡 ; 제주)가 마한(馬韓) 서해(西海) 중의 대도(大島 ; 큰 섬) 위에 있다.


그 사람들은 다소 단소(短小 ; 키가 작다)하며 언어(言語)가 한(韓)나라와 같지 않고 모두 선비(鮮卑)족 처럼 곤두(髡頭 ; 머리를 깎다)를 한다. 다만 위(韋 ; 다듬은 가죽)로만 의(衣 ; 옷)를 해 입으며, 우(牛 ; 소)와 저(豬 ; 돼지) 기르기를 좋아한다. 그들의 옷에는 상(上 ; 상의. 위쪽)은 있으나 하(下 ; 하의. 아래쪽)가 없어서 대체로 나세(裸勢 ; 벌거벗은 형세)와 같다. 선(船 ; 배)을 타고 왕래(往來)하며 한(韓)나라와 물품을 시매(市買 ; 교역, 매매)를 한다.


수서(隋書) 열전(列傳) 백제(百濟)편에 의하면, 589년 진(陳)나라의 세상이 평정되던 때에 전선(戰船 ; 싸움배) 1척이 떠돌다가 동쪽 바다에 있는 탐모라국(耽牟羅國)에 닿았다.

 

그 선(船 ; 배)이 수(隋)나라로 돌아올 적에 백제(百濟)를 경유하니, 창(昌 ; 여창. 백제 위덕왕)이 자(資 ; 물자)를 매우 후하게 주어서 보냈다.


아울러 사신을 보내어, 표(表 ; 표문)를 올려 진(陳)나라를 평정함을 축하하였다.

 

수(隋)나라 고조(高祖 ; 문제)가 이를 선(善)하게 여기어, 조서를 내려 말하길, “백제왕(百濟王)이 이미 진(陳)나라가 평정했음을 듣고, 먼 곳에서 표문을 올려 축하하였으나, 왕복(往復 ; 왕래)하기가 지극히 어려워서 만약 풍랑(風浪)을 만난다면 인명이 상손(傷損 ; 손상)될 것이오. 백제왕의 진실한 심정은 짐(朕)이 잘 알고 있소, 비록 서로 거리는 멀다 하여도 얼굴을 마주 대하고 이야기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니, 어찌 반드시 사신을 자주 보내와 서로 다 알아야 되겠소. 오늘 이후(以後)로는 해마다 따로 조공을 바칠 것이 없소. 짐도 역시 사신을 보내지 않을 것이니 백제 임금은 잘 알아서 하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사자(使者 ; 사신)가 무도(舞蹈 ; 춤을 추다)하며, 돌아갔다.

 

▲ 하멜 표류기에 실린 스페르웨르호 제주 난파 장면을 담은 삽화. © TIN 뉴스


또 그 백제 남쪽 바다로 3개월을 가면, 탐모라국(耽牟羅國)이 있는데, 남북(南北)이 1천여리(千餘里)이고, 동서(東西)가 수백리(數百里)이다. 땅에는 장(麞 ; 노루)과 록(鹿 ; 사슴)이 많고, 그 나라는 백제(百濟)의 부용(附庸 ; 부용국. 속국 의지함)있다. 백제에서 서쪽으로 3일을 가면 맥국(貊國)에 이른다.


609년, 수(隋)나라 사신이 왜국으로 갈 때 탐라국(耽羅國)을 경유하였다.


663년 백강구 전투에서 탐라 사신이 당(唐)나라 유인원에게 포로로 잡히었다.


665년 취리산 맹세에 탐라국 사신이 참석하였다.


당서(唐書) 동이전 탐라편에 의하면, 661년 당(唐)나라 용삭 초년, 담라라는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 임금 유리도라(儒李都羅)가 사신을 보내서 입조했다.


그 나라는 신라 무주 남쪽 섬 위에 있고, 풍속은 질박하고 비루해서 옷은 개나 돼지의 가죽으로 해 입는다.


집은 여름에는 가죽으로 해 인 집 속에서 살고, 겨울이면 굴 속에 들어가서 산다. 땅에서는 5곡(五穀)이 나지만 땅을 가는 데는 소를 부릴 줄 모른다. 쇠로 쇠시랑을 만들어 땅을 판다.


이 나라는 처음에는 백제에 소속되었었는데, 당나라 인덕 연중(664-665년)에 그 추장이 입조하여 황제를 따라 태산에 이르렀다가 그 뒤로는 신라에 소속되었다.


723년 당(唐)나라 개원 11년, 또 달말루와 달후의 두 부를 두어 그 수령이 조공을 왔었다.

 

그 때 달말루에서 온 사람이 말하기를, 자기들은 북부여의 자손으로서 고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사람들이 나하를 건너가서 지금 이 곳에 산다고 한다.


또는 말하기를, 타루하는 동북쪽으로 흘러 흑수로 들어간다고 하고, 달후는 실위의 종족이라고 한다. 그곳은 나하와 동말하 동쪽에 있는데, 서쪽으로는 황두실위에 연접되어 있고, 동북쪽으로는 달말루에 가깝다고 한다.

 

▲ 용머리해안 오른쪽 해안 바다가에는 하멜 표류기의 저자인 하멜이 64명의 선원과 일본으로 가다가 폭풍을 만나 제주도로 표류했다는 스페르웨르호가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 TIN 뉴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의하면, 661년 5월, 탐라 왕자 아파기(阿波伎)가 일본에 사신으로 방문하였다. 같은 해 8월, 탐라 사신이 일본에 방문하였다.


662년 2월, 탐라 좌평 도동음율(徒冬音律)이 일본에 사신으로 방문하였다.


666년 정월, 탐라 왕자 고여(姑如)가 일본에 사신으로 방문하였다.


667년 7월, 탐라 좌평 여마가 일본에 사신으로 방문하였다.


669년 3월, 탐라 왕자 구마기(久麻伎)가 일본에 사신으로 방문하였다.


674년 6월, 탐라 왕자 구마예(久麻藝), 도라(都羅), 우마(于麻)가 일본에 사신으로 방문하였다.


676년 8월, 탐라 왕자 구마기(久麻伎)가 일본에 사신으로 방문하였다. 탐라 임금 고여(姑如)가 일본에 사신으로 방문하였다.


678년 6월, 탐라 왕자 도라(都羅)가 일본에 사신으로 방문하였다.


680년, 일본이 탐라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688년 8월, 탐라 좌평 가라(加羅)가 일본에 사신으로 방문하였다.


693년 11월, 탐라 왕자와 좌평이 일본에 사신으로 방문하였다.


다음호에 ‘탐라(제주)의… ⑤’가 이어집니다.

 

 

▲ ©TIN 뉴스

 

  

박원호 TINNEWS 논설위원
(재)섬유패션정책연구원 사무국장

whpark@t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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