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 벚꽃 흐드러지게 핀 봄날 토요일 오후 건국대학교 연구소에서 김상현 기자의 칼럼 요청으로 부질 없는 패션 이야기를 쓴다.
아름답고 새로운 옷들이 누군가의 고통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누구라도 입고 행복할 수 있으며, 그 옷을 디자인한 디자이너는 정당한 칭송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는 패션계에서 계속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패션은 시즌마다 새로운 스타일을 선 보여야 한다고 믿음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시즌마다 쇼를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 같다.
아주 오래 전에는 패션쇼에서 보여준 스타일이 사람들의 옷 입는 취향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지만 지금은 패션디자인을 하는 사람도 패션쇼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패션이 시즌 상품으로 한철 장사를 하는 산업으로 자리 잡았지만, 정작 옷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시즌마다 굳이 새로운 옷을 사야 할 이유는 없다. 옷도 사용하는 도구이므로 낡아서 가치가 사라지면 새것으로 바꾸면 된다. 딱! 그 정도가 적당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입는 옷의 형태에 그다지 불만이 없으며, 자신의 스타일을 새롭게 바꿔야 할 이유도 없다.
서양에서 유래된 트래디셔널 스타일은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계속 나오고 있으며, 현재 캐주얼을 주도하는 많은 브랜드가 고유의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트래디셔널 브랜드들인 이유는 이러한 사실을 증명한다.
이번 시즌 패션쇼의 화두가 맥시멀리즘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패션계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합심하여 새로운 스타일이라고 칭송하는 것도 새로운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집단의 강박이나 망상 같이 보인다.
환경문제나 동물보호 같은 어마어마한 이슈가 패션계를 덮었었지만 지금은 언제 그랬냐 싶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어떤 스타일이 주목 받고 유행 할 것인가는 이제 오로지 대중에게 달렸다. 브랜드는 확실한 아이템을 만들고 그것을 대중에게 소개할 뿐이다.
사실 나도 환경보호, 동물보호에 대하여 오랫동안 많이 떠들었다. 그런데 그다지 효과는 없는 것 같다. 몇 명의 제자가 채식주의자가 된 것 외에는…… 그래서 이번에는 반려동물 죽을 때까지 데리고 살기 캠페인을 하려고 한다.
나는 내가 환경을 보호하거나 평생 보지도 못한 멸종동물을 위기에서 구하지는 못할꺼라고 생각한다. 그저 반려동물 주인들께 버리지 말고 끝까지 책임지라고 협박해서, 유기견이 너무 많아 데려다 키우기 벅차해 하던 김현성 편집장님께 도움이나 되었으면 한다.
장사가 너무 안되니까 패션계 사람들은 기다릴 시간이 없는 것 같다. 지금 무엇이 잘 되는지, 앞으로 무엇을 만들어야 장사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느라 정작 무엇을 만들고자 하는지 생각도 못하는 것 같다.
며칠 전 진로 상담을 한 졸업생은 자기가 무엇을 잘하는지는 알고 있지만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사실 대부분은 학생들이 그렇다. 어떻게 하면 먹고 살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고민을 많이 하지만,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의 패션 브랜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무엇을 만들어야 장사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하여는 엄청난 조사와 분석을 하지만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패션을 전공한 젊은 디자이너들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도 하기 전에 무엇을 해야 잘 팔리는지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해왔던 주입식 교육처럼 그렇게 패션계에서 일을 시작한다.
우리나라 패션계가 망가진 이유가 된 바로 그 방법을 그대로 배우면서……
해가 바뀌어서 피어나는 꽃보다 패션쇼의 옷들이 아름다울 리 만무하다. 그 꽃보다 젊은이가 덜 아름다울 리 만무하다.
사람은 모래시계 같다. 떨어진 모래를 뒤집으려 하지 말고 피어나는 꽃을 보면서 만족하는 것이 패션인 듯하다.
작년에 보았던 꽃이 똑같이 올해 핀 것 같지만 절대 같지 않다. 그만큼만 새로울 수 있다면 패션도 만년을 갈 것이다.
심상보
피리엔콤마 대표
건국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 겸임교수